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 정지원 교수(디자인조형학 11), 디자인+공학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다
  • 작성일 2026.01.27.
  • 작성자 고대투데이
  • 조회수 17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
에라스무스 대학병원
정지원 교수
(디자인조형학 11)
디자인+공학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다


정지원 교수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입학, 경영학과 이중전공, 졸업 후 산업디자인공학 박사를 받고 지금은 세계적인 공과대학의 교수이자, 네덜란드 최고의 연구중심병원에서 헬스케어 시스템을 연구 중. 언뜻 보기에 각기 다른 분야를 오간 것 같은 그의 경력은 사실 '디자인적 사고를 기반으로 기술을 통해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한다'는 하나의 줄에 꿰인 눈부신 구슬들이다. 유럽 최상위 공대로 꼽히는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과대학(TU Delft)에서 산업디자인공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정지원 교수를 만났다.


인촌기념관 앞에서 점프하는 모습

▲ 고려대 졸업 사진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으로 출발한 새내기

2011년,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며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에 입학했다. 자동차 연구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었다. "훌륭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디자인조형학부에 와서 동기들을 보니 정말 천재적인 친구들이 많았어요. 더욱이 자동차 디자인은 디자인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진짜 디자인 천재들이 모이는 분야라고 하더라고요. 차원이 다른 탁월한 미적 감각을 지닌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내가 꿈꿔왔던 자동차 외관 디자인이 내가 잘하는 일은 아니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난 그 일을 하려고 여기 들어왔는데, 자동차가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에 빠졌죠."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그는 이내 '그럼 내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다음 질문으로 성큼 넘어갔다. "경영학과 공부를 하면서 좀더 생각이 확장되었어요. 디자이너 출신이니 디자인적 기초를 가지고 전략 쪽, 혹은 디자인 설계 방법론 쪽을 개발한다면 제가 잘할 수 있겠다, 나아가 자동차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경영학과 과목들이 아주 흥미롭기도 했고요."

그는 경영학 이중전공을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빡빡한 학교 생활을 했다. "디자인 쪽은 중간·기말 고사보다 학기 내내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하고, 경영학과는 반대로 중간·기말 고사가 중요하다 보니, 학기 중에는 밤을 새워가며 디자인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고, 또 중간·기말 고사 기간에는 시험 공부에 몰두해야 했어요. 저는 종종 법대 도서관에서 공부했어요. 법대 도서관이 가장 조용하고, 엄청나게 집중해서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경영학과 디자인 공학의 날개를 달다

디자인조형학부에서 닦은 디자인적 소양과 경영학과에서 배운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커리어 관련 강연이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대를 다니면서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는 학교에서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정말 많은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선배님들이 찾아오셔서 진로에 대한 강연을 많이 해주시잖아요. 직업 및 진로 관련 강연이라든지 선배와의 대화 등이 정말 풍성하게 열리는데 열심히 찾아가서 말씀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큰 도움을 받았죠. 선배님들이 들려주시는 말씀들이 굉장히 흥미롭고 재밌었어요."

이후 카이스트 대학원과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으며 '디자인 공학'이라는, 당시에는 새로웠던 영역에서 도전을 이어갔다.

"디자이너로서 완벽한 미감을 타고났는지는 확신할 수 없어도, 디자인이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디자인 씽킹과 전략적 사고에 석사과정 때는 파이썬 등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익혔어요. 그 과정에서 디자인의 방법론과 컴퓨터 공학, 데이터 사이언스를 접목하여 발전시키는 방법을 질문하게 되었죠. 마침 네덜란드에서 델프트 공대와 글로벌 기업 필립스가 저와 같은 질문을 갖고, 데이터 공학 기반의 디자인 방법론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박사과정을 지원했어요."

네덜란드 델프트(델프트 공대 위치)와 아인트호벤 (필립스 본사 위치)에서 연구하며 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직접 대면하여 풀어나가는 작업을 했다. 디자인으로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델프트 공대의 접근방식은 정지원 교수의 방식과 정확히 일치했다. "델프트에서는 디자인에 대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가르치고 습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해요. 미적 감각에 집중하기보다, 디자인적 사고를 우선시하죠. 그런 철학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기술의 빠른 발전보다는 기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더 중점을 두지요."


델프트와 정지원 교수의 사회적 문제 해결 미션

미션

"심장병을 가진 어린이들이 마음껏 운동하도록 하려면?"

심장 질환을 가진 아동들은 건강 문제로 충분한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당한 운동은 필요하고 오히려 유익한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운동을 도울 수 있을까?

분석

"왜 심장병 어린이들은 축구를 할 때 거의 골키퍼를 하지?"

연구를 통해 발견한 것은 심장병 환아들이 충분한 운동을 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실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아닌 가족들의 우려, 두려움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가족들이 무의식 중에 '가능한 한 움직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많이 전달하기 때문. 이 두려움을 줄이고 안전한 운동이 가능하게 하려면?

솔루션

정 교수 연구팀은 어린이의 심박수 등 심장 건강 지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심장박동의 변화 추이와 위험 전 단계 알림을 어린이와 보호자에게 사용자 친화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의료진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보호자와 의료진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반 시스템 개발·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의 목표는 질환 그 자체보다 더 큰 문제로 작용하는 '보호자의 두려움'을 완화하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과 혁신 디자인

정지원 교수가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과목은 '기술기반 혁신 설계 실습'(Tech-enabled innovation Studio)이다. "네덜란드 정부 혹은 기업이 클라이언트가 되어 실제 사회에 현존하는 문제들을 의뢰하면 이를 학생들과 한 학기 동안 함께 풀어나가는 수업이에요. 예를 들어, 네덜란드 경제 부처에서 세금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디지털 이노베이션 방법을 의뢰하거나, 네덜란드의 농협에 해당하는 '라보 뱅크'에서는 유럽에서 시행하는 '지속 가능성 스코어'를 농장주들에게 잘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요청하지요. 소를 키우면서 CO₂ 배출이 많으면 농장에서 원하는 대출을 받을 수 없거든요."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기술이 적용되지만, AI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 수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과 방법론을 AI 도구를 활용하여 어떻게 혁신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데 있다.

CO-AI Health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 정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수행하는 7억 원 규모의 정신건강 AI 연구 프로젝트, CO-AI Health

정 교수는 네덜란드 최대 연구중심병원인 에라스무스 메디컬 센터 외과에 공동 임용되어 재직 중이다. 현재 수행 중인 '인공지능기반 보건의료 시스템 전환' 연구와 '미래 진료실 2030'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정부가 주관하는 '데이터 기반 혁신 및 보건의료가속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정지원 교수가 연구팀과 함께, 교수 임용 2년 만에 총 35억 원 규모의 연구비를 유치하는 데 기여한 의미 있는 성과이다. "현재의 네덜란드 의료 시스템은 인구의 1/6 이상이 헬스케어 분야에 종사해야만 유지될 수 있어요. 앞으로 그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요. 우리는 AI를 이용해 시스템을 개선하고, 더 많은 인력 투입 없이도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전체 시스템을 혁신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숨은 필요를 찾고 해결하는 디자이너로

연구자로서 정지원 교수의 비전은 무엇일까. "영어로 'Society as Lab'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연구자들이 사회가 요청하고자 하는 필요가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하는 도구, 혹은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용자의 내재된 필요를 파악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역할이거든요. 이 사회에 숨겨진 필요를 파악하는 도구를 찾아, 그 필요를 기반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연구실 안에서만 사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을 넘어 사회를 들여다보는, 이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자로서 계속 찾아가고 싶습니다."

공학이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최적으로 해결할지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디자인은 문제의 발견과 해결 방법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정 교수는 설명한다. 시스템을 깊이 들여다보고 시스템의 변화를 만드는 것, 나아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디자인적 사고의 힘이다. 연구가 논문이나 발표에 머물지 않고 현실 사회와 정책에 영향을 주어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그가 연구를 계속하는 목표다. 사회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그의 연구 여정을 기대해보자.

테이블에 걸쳐앉은 정지원 교수
Most Inspiring 수업 수상

▲ 학생들이 선정한 'Top 3 Most Inspiring 수업' 수상 당시

델프트 운하 옆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

▲ 페르메이르(〈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의 도시로 알려진 델프트 운하 옆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그림 시간

Special Page | 친애하는 고려대의 후배들에게, 네덜란드에서 띄우는 편지

안녕하세요, 안암의 호랑이들. 저는 지금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대투데이〉를 통해 캠퍼스의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부탁받아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제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스스로 원하는 일을 자신 있게 선택하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은 고려대학교 학부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할지 막연했던 20대 초반, 학교가 제공한 다양한 기회를 통해 고려대의 선배·동기·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더 넓고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내가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커리어의 방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이러한 경험이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종합대학이 아닌, 공과대학과 의과대학 중심의 환경에서 석·박사 및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거치며, 고려대와 같은 종합대학 안에서 서로 다른 전공과 삶의 방향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자산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예시'가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대 후배분들에게 가장 큰 자산은 다양한 전공과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의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 시절 저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떻게 좋은 인연을 맺고, 이를 대화와 신뢰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졸업 후 시간이 흐르며, 함께 교정을 누비던 동기·선배·후배들이 산업, 학계, 정부 기관 등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저에게 가능한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능성 속에서 어떤 삶이 가장 나다운 삶인지 서로 고민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남아 있습니다.

고려대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대학 생활 동안 전공과 성향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동기·선배·후배들과 많이 만나고, 많이 질문하고, 많이 이야기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커리어를 하나의 정답으로 좇기보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 속에서, 또 그 질문들을 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From. TU Delft, 정지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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