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강의실에 들어서면, 여러 언어가 겹쳐서 들린다. 한국어로 건네는 인사, 다양한 억양으로 돌아오는 대답, 웃음. 〈세계 속의 한국문화〉는 한국을 공부하려는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된 GKS 융합전공 수업이다. 이 수업은 '한국문화'를 다루지만, 한국의 문화를 정답처럼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이 각자의 문화와 경험을 꺼내놓고, 한국을 그 사이에 놓아 비교하며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름을 어떻게 불러주면 좋을까요?"
수업을 이끄는 송지예 교수는 출석을 부르는 방식부터 다르다. 강의실을 채운 학생들이 모두 외국인 유학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이름과 발음을 미리 확인하고, 가능한 한 그 방식대로 불러준다. 외국인 학생들만 있는 강의실에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송 교수는 "학생들이 모두 유학생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한결 편안해요. 덕분에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어 수준은 제각각이지만, 그 차이가 오히려 부담을 덜어준다. 몽골에서 온 나몽 학생 역시 이 점을 수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한국어를 그렇게 잘하지는 않는데, 외국인 학생들이랑 같이 들으니까 마음이 좀 편해져요. 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은, 이 교실을 안전한 질문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한국문화를 배우고, 자기 문화의 자부심을 키우는 수업
송 교수에게 이 수업의 보람은 의외의 지점에서 찾아온다. 그는 "학생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자국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한다. 한국문화 이해를 위해 던지는 질문들이 결국 학생 각자의 문화와 역사로 시선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실제로 나몽(심리학 23, 몽골) 학생은 한국의 관계 문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자라온 문화의 성격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눈치 문화’가 있잖아요. 그런데 몽골에는 그런 문화가 거의 없어요. 자기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는 편이에요." 그는 한국 사회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려다 보니, 오히려 몽골 문화가 지닌 개방성과 직접성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고 덧붙였다. 한국을 기준 삼아 이루어진 비교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으로 되돌아온 순간이다.
송 교수의 학문적 여정 역시 '비교'에서 출발했다. 그는 한국사를 전공한 뒤 국제정치를 공부했다. "국제정치를 선택한 것도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였어요. 비교를 통해서 내 문화나 내 역사를 더 잘 알게 되니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은 수업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다은(교환학생, 베트남) 학생은 이 수업을 통해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인류학 관점에서 비교하면서 바라보는 걸 배웠어요. 어떤 문화를 볼 때, 그 문화만 단독으로 놓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장점도 보고 부족한 점도 보게 돼요. 편견 없이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한국문화를 배우는 수업이,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훈련하는 시간이 되는 이유다.


▲ 매 수업마다 학생들은 조별 과제를 위해 서울의 주요 명소를 방문한다. (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팀, 국립현대미술관 팀, 종묘 팀
'한국'은 교실 밖에서 더 입체적이 된다
〈세계 속의 한국문화〉는 강의실 안에 머물기보다 현장으로 나간다. 학생들은 팀을 이루어 특정 장소를 직접 방문하고, 그 경험을 조사와 발표로 연결한다. 덕수궁,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등 견학 공간은 다양하다. 누군가의 발표는 또 다른 학생에게 '다음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한국의 문화와 공간은 각자의 시선과 언어를 거쳐 다채롭게 받아들여진다.
학생들에게 이 수업은 '한국을 더 깊이 알기 위한 수업'인 동시에,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나몽 학생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외국인 친구들한테 소개해 주고 싶어요. 꼭 둘러봐야 할 명소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다은 학생 역시 "교환 학생이라면 한국의 문화적 장소를 방문하고 발표해 보고,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팀워크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자신을 '완성된 답을 가진 교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K-팝 같은 건 학생들이 저보다 훨씬 잘 알아서, '제가 가르쳐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오히려 그는 "가르치면서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의 역할은 '인기 있는 한국문화'를 이미 잘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 문화가 어떻게 형성됐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한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K-팝이 훌륭한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지를 중심으로 보려고 해요."
이러한 접근은 '당연한 전제'를 낯설게 만든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뭐냐고 물으면 단군신화나 유교문화가 빠질 수 없잖아요. 하지만 이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모르거든요. 한국에서 자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을, 어떻게 쉽게 보여줘야 할지가 고민이에요." 특히 장례 문화나 생활 관습처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에서는 영상이 대화를 여는 열쇠가 된다. 그는 다큐멘터리나 기록 영상을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몽골에서는 어때요?", "베트남에서는요?" 하고 묻는다. 비슷한 관습이 있는지, 각자의 나라에서는 어떻게 다른지를 묻고 답하게 한다. 문화는 서로 비교하고 질문하며 이해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이 수업의 기반에 있다.
강의계획서
| 1강 I. 문화인류학의 시각 |
| 2강 한국인의 정체성 |
| 3강 한글과 문학 |
| 4강 기록 문화 |
| 5강 한국의 건축 |
| 6강 타자의 눈에 비친 한국 |
| 7강 II. 민속학의 시각: 민중문화 |
| 8강 한국의 세시풍속 |
| 9강 관혼상제 |
| 10강 한국의 토속신앙과 종교 |
| 11강 III. 문화연구의 시각: 세계화와 K-컬처 |
| 12강 한국의 문화산업 |
| 13강 한국의 패션산업과 K-뷰티 |
| 14강 한국의 음식과 식문화 |
| 15강 기말 보고서 제출 |
질문과 관심이 생겨나는 교실
▲ (좌측부터)다은(베트남), 나몽(몽골) 학생
수업은 이해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진다. 나몽 학생은 "한국어 자체를 더 배우고 싶어졌어요"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쓰잖아요. 몽골에서도 '우리'라는 말은 쓰지만 '우리나라'라고 표현하지는 않거든요. 그런 표현이나, 눈치 문화 같은 것도 더 알고 싶어졌어요." 다은 학생은 최근 드라마 〈정년이〉를 계기로 국극이나 판소리 같은 한국 전통 예술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 한국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질문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교실에서 한국은 언제나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거울삼아 비출 때에만, 한국은 비로소 입체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한국문화〉라는 제목은 그래서 강의 내용이 아니라 수업 방식 자체를 가리킨다. 한국을 세계 속에 놓고, 세계를 한국 옆에 두는 것. 그럴 때 각 문화의 고유함이 살아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존중의 감각이 길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