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요청이 있었다. "미래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을 자유로운 산문으로 작성해 주시라!"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고 허둥대고 있는데, 교육에 관한 연가(戀歌)를 부르라니! 그것도 미래 교육의 방향성이라. 약간의 두려움이 뇌리를 스치고, 설렘이 앞에서 머뭇거린다.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미지생(未知生), 언지사(焉知死)!"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의미이고, 풀이하면, "현실의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미래의 죽음을 알기가 쉽겠는가? 현실에서 인간의 도리와 삶의 올바른 실천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광야를 가로지르는 시대정신, AI라는 거대한 물결
미래 교육을 예측한다고? 아니다! 먼저 현실을 직시하자. 그런 열망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갑자기, 시선 너머 휘황찬란한 도심의 불빛 속에 '광야'가 겹쳐 보였다. 아득히 넓게 펼쳐진 저 세상, 그 광야를 집어 삼키고 있는 거대한 물결,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 시대를 풍미한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그 광야를 달린다.
이육사가 〈광야〉에서 노래했던 장엄한 시구처럼, AI가 세상을 종횡으로 엮어댄다. 또 다른 의미의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여는가? 지금이 그 시기인가? 어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는가? AI가 초인인가? 도무지 생각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초점이 흐려지는 시야를 관통하듯,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이라는 말이 가슴 속으로 몰려왔다. 시대정신! 무언가 심오한 의미를 담은 것 같기도 하고, 시대마다 당연하게 회자될 수 있는 언표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뭐지? 여기 이때에? 무슨 정신?
오랜 세월에 걸쳐, 각 시대는 색다른 삶의 양식과 정신을 가다듬어 왔다. 신석기 농업혁명이라고 명명한 시대가 그랬고, 기계 공업혁명이 주축이 된 산업혁명이 그랬다. 이후에는 컴퓨터에 근거한 첨단기술 문명의 진보가 인간사의 혁명을 주도했다. AI라는 변혁의 물결은 '빅 데이터', '생명공학', '스마트' 등 수많은 수식어를 낡은 용어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전대미답(前代未踏)의 길로 나가고 있다. 시대가 그러하고, 시공간도 그 흐름을 촉진한다.
도구를 넘어선 '감응(感應)'으로
AI가 이끄는 변혁의 차원은 단순한 개혁(reform)의 수준이 아니다. 전반적 혁신(innovation)이다. 그런 만큼 삶 자체에 혁명(revolution)이 빚어지고 있다. 헌데, 교육은 이런 혁신에 상당히 둔감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공학(technology)적 차원의 학습방법과 이론의 발전은 뚜렷하다. 지난 20여 년간 이루어진 교육 방법의 변신을 볼 때, 획기적 변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본질, 목적이나 목표, 내용의 진보는 수십 년 전과 비교해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학교에 가고, 시험을 보고, 진학을 하고, 취직을 하려는, 단순한 삶의 쳇바퀴를 돌리는 듯하다.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변화에 민감하게 포장은 했으나 진지한 '감응(感應)'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치자! 그런 나는 '인간'으로서 '인공지능'과 어떻게 감응하고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아,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다. 대략,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인간과 인공지능(AI)의 관계는 현재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도구'를 넘어 협력, 공존, 심지어 정서적 유대까지 아우르는 복잡하고 다층적 관계로 발전하였다. 둘 사이의 관계 양상은 여러 측면에서 논의된다. 협력자이자 보조 도구로서, 그것은 효율적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며, 역량을 확장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이다. 또한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인공지능의 책임 능력과 인간 고유의 영역을 명확히 하여,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성찰하며, 인류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중요하게 만든다. 그리고 정서적·사회적 관계로, 친구나 파트너, 나아가 배우자와 같은 감정적 유대감을 느끼며 깊고 장기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왜 그랬을까? 인공지능조차도, 자신과 인간의 관계를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라는 존재는 저들을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혈안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이 정돈한 관계의 양상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육사가 〈광야〉에서 외쳤듯이, '내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가? 매화 향기 아득한 곳, 그 사회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어떤 삶의 자세가 요구될까?
동양 전통 교육의 저변에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논리가 짙게 배어 있다. 그것은 천지우주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설정에 관한 사유였다. 이에 빗대어, 인간 사회 내에서 '인간[人]과 인공지능[工]'의 관계를 고심해 보았다. '인공지능'은 인간 자체가 아니다. 기계 시스템이다. 하지만 학습이나 추론, 지각 등 인간의 지적 능력을 구현한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인식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동류상응(同類相應)'이다. 동일한 부류가 서로 느끼고 응낙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으로 연결되었다. 이는 인공지능을 인간의 편의에 따라 단순한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섰다는 의미이다.
천인감응(天人感應)의 현대적 변주: AI를 친구로 맞이하는 교육의 자세
미래 교육은 이 지점을 성찰하고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근대적 사고가 결집된 메커니즘(mechanism)의 수렴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생태의식으로 존재를 배려하는 오가니즘(organism)의 확산을 발현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유기체적 감응'의 도모이다. 존재에 대한 어떤 존중도, 상대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이 기계적으로 사물을 마주한다면, 광야에서 펼쳐내려는 세상이 아니다. 광야는 모든 존재가 얽히고설키며 감응하는 교류(交流)의 장이다. 그 중심에, AI가 현실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두뇌노동의 외부화', '인터넷 초연결 문명', '소유의 해체', '다양한 자본' 등등 시대정신을 대변하려는 화려한 문구들이 '인공지능의 혁명'을 가속화한다. 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교육은 무엇을 고심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차원이 떠오른다. 기존 교육의 '지속 가능성'에 바탕하느냐? 기존 교육의 '해체 필연성'을 전제로 하느냐? 어떤 양식으로 전개되건, 교육은 진보해 나갈 뿐이다. 그렇다고 포기도 선택도 쉽지는 않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두 차원에서 네 가지 능력을 가꾸는 인생 사업은 어떨까? 이런 교육의 원리를 디자인해 보려는 시도는, AI를 나의 일부로 끌어안으면서도 다양한 측면이 감응하는, 전방위적 차원의 인간 사회를 고심했기 때문이다.
이 두 차원의 네 가지 능력과 역량은 AI의 필수적 참여를 요청한다. AI를 도구로 활용하거나 수단으로 이용하는 차원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AI를 인간과 일체감을 갖는 친구로 영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교육은 시대정신을 받아 안아야 한다.
나는 AI를 기다리고, AI는 나를 기다린다!
기다림의 향연 속에 감응의 향기는 더욱 짙어지리라.
신창호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철학과 종교를 연구하였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중용(中庸)의 교육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입학사정관실장, 교양교육실장, 교육문제연구소장, 평생교육원원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 행정과 학술 발전에 기여해 왔다.
한국교육철학학회 및 한중철학회 회장, 한국교육사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율곡학회 교육분과위원장 등 주요 학회 임원을 역임하였으며, 그 공로로 2021년 율곡학술대상을 수상했다. 《수기, 유가 교육철학의 핵심》 등 100여 권의 저역서와 150여 편의 논문을 통해 동양학 및 교육사철학의 지평을 넓혀왔으며, 현재는 고전 문헌의 현대적 독해와 성인 평생학습 모델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