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성공을 일궈내야 하는 이민 사회. 여러 성공 스토리의 이면에는 그늘진 마음의 병이 자리하기도 한다. 생존과 정착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 돌봄은 뒷전이 되고, 세대 간의 간극이 생각지 못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NGO '유스타 파운데이션(YouStar Foundation)'을 이끄는 강소연 대표는 이처럼 소외된 한인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고려대의 공동체 정신
자신을 '뼛속까지 고대인'이라 소개하는 강소연 대표. 오늘의 그를 만든 뿌리는 단연 '민족고대'의 정체성이다. "가장 존경하는 분인 아버지(물리학 60)께서 고려대의 친구들과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제게 고려대는 최고의 학교이자 단 하나의 꿈이었죠."
아버지를 따라 물리학과를 지망했으나, "물리학은 천재들이 하는 학문이니 너는 조금 더 실용적인 학문을 택하라"는 아버지의 애정 어린 '돌직구' 조언에 재료공학과로 진학했다. 94학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들과 학번 동기인 그의 대학 시절도 꽉 차게 채워졌다.
재료공학과 내 사회과학 모임 '마테리아'에서 시대의 고민을 치열하게 나누는가 하면, 고려대 유일의 록밴드 '크림슨'의 키보디스트로서 연습실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졸업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을 때도, 그를 지탱해 준 것은 '남가주 고대교우회'라는 또 다른 가족이었다. "고려대 선후배 간의 끈끈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죠. 제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낯선 미국 땅에서도 교우들은 제게 더없이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이민 사회의 금기, 정신건강 이야기를 양지로
미국 현지에서 공인회계사(CPA) 자격을 취득한 그는 성실함을 무기로 한인 사회 최고의 회계법인 'CHLK'의 파트너까지 올랐다. 커리어의 정점에 섰을 무렵, 강 대표는 남편과 함께 회계사로서의 성공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명을 마주하게 된다.
연세대를 졸업한 남편 故 박상균 씨는 기자와 PD로 활동하며 남가주 고대교우회의 영상을 제작하는 등 교우회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선배 교우들 또한 "연대 박 서방"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그를 아꼈다. 토이(TOY)의 객원 가수이기도 했던 남편은 섬세한 예술적 감수성만큼 주변의 아픔에 각별히 공감했는데, 특히 백혈병 환자를 위한 한인 대상 골수 기증 캠페인을 벌이면서 이민 사회에 숨겨져 있는 깊숙한 아픔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골수 기증에 대한 한인들의 거부감이 컸어요. 남편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하동균, 장혜진 등 유명 가수들을 초대해 '기적 콘서트'를 열고, 골수 기증이 나와 한인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며 수익금은 조혈모 세포(골수) 기증 등록을 위한 홍보에 사용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유스타 파운데이션을 설립하고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한 나눔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인 사회에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정신적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연약함을 내보이는 것을 경계하는 보수적인 이민 문화 속에서 우울증, 가족 내 갈등은 함구해야 할 '수치'로 여겨졌다. 드러내지 않아 적절한 상담이나 치료도 받을 수 없다가 결국 곯아 터지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골수 이식과 마찬가지로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터부가 심했어요. 남편 또한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좋은 의사와 약물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극복했던 터라 이런 상황을 더욱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치유 경험과 재능들을 한인 사회의 치유를 위해 쏟기로 하고, 유스타 파운데이션은 2018년부터 정신건강에 집중하여 다양한 캠페인과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자살 방지와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리는 '네버 기브업(Never Give Up) 캠페인'은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우울증, 불안 장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미국 최초의 한인 전용 상담 전화 '웜라인(Warm Line)' 서비스는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한인들을 위한 응급 구조대 역할을 한다. 문화적 편견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두려워하는 한인들을 위한 안전한 대화 창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차이를 좁히고 상호이해와 갈등 극복을 돕는 세미나도 꾸준히 열고 있다. 이 일에는 고려대 허태균 교수 등이 함께하며 힘을 보탰다.
"안타깝게도 미주 한인의 자살률은 지난 10년 사이 50% 이상 급증했습니다. 불안한 청년층부터 고립과 우울감을 겪는 노년층까지 전 세대에 걸쳐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자살을 가문의 수치로 여기는 장벽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죠. 성취 지향적인 문화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비극을 키우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 소통과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현지 언론은 유스타 파운데이션을 '한인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라 표현한다. 2025년에는 '코리안 아메리칸 파운데이션(KAF)'으로부터 공익성을 인정받아 커뮤니티 그랜트(Community Grant: 지역사회나 단체가 특정 목적의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조금)를 받는 등 지역사회의 지지도 두터워지고 있다.


▲ (위) 아버지와 함께 고연전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 (아래) 유스타 파운데이션 비전개더링에서 팀원들과 함께
"성취 지향적인 문화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비극을 키우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 소통과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변함없는 고대 정신과 고대 사랑
강 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고려대 국제재단' 이사로서 모교를 향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세무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해외 교우들의 소중한 기부금이 세제 혜택과 함께 모교에 잘 전달되도록 돕는 일이다. "거금의 유산을 쾌척하거나 매달 정성껏 수표를 써서 보내주시는 선배님들의 기부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제 전문지식으로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끼죠."
유스타 파운데이션이 미션을 향해 걷는 길에도 고려대 교우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봉사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콘서트, 세미나 등 큰 행사마다 여러 고대인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셨어요. 자원봉사자로, 재단의 이사로, 혹은 숨은 후원자로 말이죠. 한인 커뮤니티의 정신건강을 위한 활동에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신 고대인들 덕분에,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가능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 국제재단 이사진과 모교 방문
남편이 뿌린 꿈의 씨앗을 잇다
지난 2023년, 강소연 대표는 든든한 동지였던 남편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슬픔에 머무는 대신 남편이 남긴 유산을 이어가기로 했다. "남편의 부재가 가슴 아프고 항상 그립지만, 남편이 참 좋은 삶을 잘 살았다는 것, 선하고 멋진 꿈을 꾸며 그 씨앗을 뿌렸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꿈을 이어가고자 해요. 유스타 파운데이션은 생존과 정착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온 이민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메시지를 제시하고, 해법을 함께 풀어가는 귀한 단체입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유스타 파운데이션과 강소연 교우의 길은 공동체의 의미, 그리고 '이타(利他)'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고대 정신의 아름다운 발현이다. '당신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줄게요'(YouStar)'라는 이름처럼, 상처받은 이들이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도록 돕는 그들의 꿈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걷는 이들을 비추는 희망의 등대가 되어 계속 반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