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단정 짓지 말자, 강용수 교수(철학 86)의 행복론
  • 작성일 2024.09.02
  • 작성자 고대투데이
  • 조회수 37
LIQUIDPOLITAN
강용수 교수(철학 86)
철학 교양서 최초
전 서점 베스트셀러 1위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
미래를 단정 짓지 말자

창 밖을 바라보는 강용수 교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표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유노북스, 2023)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행운

내가 2023년 가을에 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다루고 있다. 철학에서 행복은 그리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출간한 지 1년도 안 지난 현재 200쇄 기념 확장판이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2014년 1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3년간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중점연구소에서 함께 추진했던 프로젝트 '호모 베아투스'(Homo Beatus, 행복한 인간)에서 시작되었다. 행복(Well-being)에 대해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오상무(고려대 철학과) 교수였고, 함께 주제를 정하고 연구하는 데 이찬, 성창원(고려대 철학과) 교수 외 여러 연구자가 참여했다. 당시 나는 행복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자는 제안에 회의적이었다. 행복이 너무 평범한 주제이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 논문이 대중서로 거듭나 큰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대조차 하지 않은 곳에서 대박이 터진 것이다.

객관적인 행복은 있는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비관적으로 또는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래를 예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미리 정해 놓고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의 미래를 행복이나 불행으로 미리 예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살다 보면 행복해지는 일도 많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일까, 아니면 인생의 과정과 결과일까?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다 보니 사는 것일까? 쇼펜하우어의 입장은 후자다. 먹으려는 욕망이 있으니 음식을 취하게 되며 그 결과는 행복(소화)이 될 수도, 불행(배탈)이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행복해지려고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을 추구한다고 할 때, 우리는 '성공', '출세', '권력' 등 누구나 공감하는 행복의 조건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행복은 대부분 바깥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명예'와 '부'가 바로 '외적인 좋음'(선)에 해당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와 '내가 무엇을 가지는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행복한 삶의 핵심을 이룬다. 입신양명, 금의환향이 전자에 해당하며 대박과 벼락부자가 후자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보면 명예와 돈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분야에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외적인 좋음이라는 꿈은 이루는 순간 지루해진다. 반대로, 이루지 못하면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시계추' 비유를 들면 인간의 욕망은 결핍과 과잉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오간다. 이러한 진자 운동에서는 배고픔과 폭식 모두 고통이다. 모태솔로는 외롭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도 피곤하다. 돈이 없으면 힘들지만 돈이 너무 많으면 할 일이 없어 따분해진다.

지성과 행복의 관계

쇼펜하우어는 행복이 객관적인 조건보다는 주관적인 조건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 세계는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달리 보일 뿐 아니라 또한 성격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머리가 좋다고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성이 발달할수록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 더 불행해질 수 있다. 지능이 발달하지 않은 동물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살지만 지능이 높은 인간은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느라 근심으로 살아간다. 역설적으로 우둔한 동물보다 똑똑한 인간이 더 불행하다. 과거에 좋았던 일을 추억하고 나쁜 일에 상처받으며 미래에 큰 희망을 갖지만 비극이 닥칠까 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생각이 많을수록 그에 비례하여 고통이 커진다. 과거와 미래에만 빠져서 정작 가장 중요한 현재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선 위에 존재한다. 행복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매순간 결정하며 만들어 가야 한다. 따라서 알 수 없는 미래를 지금 예단하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인다.

각자의 행복은 다르다

행복의 중요한 조건은 이미 자기 안에 있기 때문에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개성'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욕망)과 내가 진짜로 할 수 있는 것(능력)이 일치할 때 개성이 잘 발현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개성에는 우열이 없으며 1등과 꼴찌를 매길 수 없다. 어떻게 개성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어느 정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남의 생각에 맞추고 눈치를 보다가 싫은 일을 마지못해 하기도 한다.

욕망과 능력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고 한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처음부터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데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실패의 아픔을 통해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비로소 찾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70세쯤에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인생의 40년을 텍스트로 보면 30년은 그에 대한 주석이라고 한다. 먼저 40년을 경험하고 나머지 30년은 그것에 대한 성찰,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70세를 넘어야 이 세상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인생의 무의미함을 일찍 깨달았다고 생각해 자살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인생은 항해다

우리는 드넓은 바다에서 파도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배와 같다. 파도의 흐름 속에서 유동적인 삶을 살아가다 보면 침몰하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흔들림에 잘 견디기 위해 배에 묵직한 바닥짐이 필요하듯이 인간의 마음에도 적당한 무게, 근심과 고통이 필요하다. 아무런 짐이 없어 가벼운 배가 작은 파도에도 균형을 잃고 흔들리듯이, 아무런 근심이 없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무게는 침몰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늘 적당한 고통의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인생은 항해이므로 우리를 흔드는 파도를 거부할 수는 없다. 늘 바뀌는 날씨처럼 상황은 변화하고 있으므로 고정적인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파도가 잔잔해지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파도의 흔들림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테이블에 두 손을 올리고 깍지를 낀 강용수 교수

 

강용수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서양 철학을 전공(학/석사),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학을 바탕으로 자기 긍정과 행복을 위한 방법을 전하고 있다. 저서: 《니체 작품의 재구성》, 《니체의 『도덕의 계보』 읽기》, 《Nietzsches Kulturphilosophie》, 《쇼펜하우어가 들려주는 의지 이야기》 등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의 핵심은 '현재를 즐기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배제하려는 잘못된 태도다. 하나의 미래에 대한 속단이다. 40대에 큰 실패를 경험한 쇼펜하우어에게 미래는 피하고 싶은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나중에 그에게 다가온 큰 행운과 행복, 그리고 명성과 부를 가진 노년을 보면 현재에만 집중하라는 그의 말은 잘못되었다. 요즘 젊은 세대가 표현하는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의 한탄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한 절망감에 오늘 하루만을 즐기다 보면 미래에 다가올 뜻밖의 행운을 놓칠 수 있다.

니체는 남들이 좋다고 '칭찬'하는 길은 '아직 자신의 진정한 길이 아니'라 '남의 길'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길, 성공과 돈이 보장된 행복의 길만을 가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적자를 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만든 책이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대박이 났다. 책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편견이지만 '책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식의 단정은 잘못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예단이 틀렸던 것처럼 나의 1년 전 예단도 완전히 틀렸다. 유동적인 시대를 사는 오늘날,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미리 단정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세계에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 세상이든, 나 자신이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주민은 한 곳에 머무르지만 유목민(Nomad)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길만 보고 간다면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단 하나만이 아니다. 인생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 갈래이며, 멈추지 않고 계속 가다 보면 길을 잃은 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한다. 미래가 불행일지, 행복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미래에 대해 큰 기대를 걸지는 않더라도 작은 행운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꾸준히 하다 보면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가지려면 미래에 대해 늘 열려 있어야 한다.